3.1. 중세 예술수요자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5세기부터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략 14-15세기 까지를 중세라 합니다. 중세는 실로 1,000년이나 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있지만 중세 예술에 관해 말하려면 서기 1,000년경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예술은 경제적 잉여가 있어야 발전되는데 그 이전에는 도저히 그럴만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게르만족은 노쇠한 로마 제국을 멸망시켰으나 제국이 차지하고 있던 광대한 땅을 다스릴 만한 통일된 역량이 없었습니다.
전쟁으로 도시에 물을 공급하던 수로가 파괴되자 사람들은 농촌으로 떠나갔고 그렇지 않아도 로마 제국 말기부터 행정적 힘이 미치지 못해 피폐해진 도시들은 버려진 채 파괴되었습니다. 촌락은 고립되고 사람들의 삶은 다시 자연 경제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인구의 대다수는 만성적 영양부족 상태에 빠져 있었고, 주기적으로 기근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흙을 먹기까지 한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800년 크리스마스에 로마 교황이 프랑크 왕 샤를마뉴(Charlemagne)에게 신성로마제국 황제 칭호를 준 것은 진정한 중세의 개막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거듭되는 이민족의 침입으로 군사력이 필요했던 교회는 프랑크 왕국을 보호자로 택했고 프랑크 왕국은 교회와 손잡아 정통성을 인정받았습니다. 190센티미터에 이르는 거구에다 만능 스포츠맨이며 목소리가 우렁찬 샤를마뉴는 스스로 신의 전사라 여기며 30여 년 동안 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혀나갔습니다.
그가 죽은 후 프랑크 왕국은 세 조각으로 분열되지만 샤를마뉴의 치세는 로마 멸망 후 몇 세기에 걸친 무질서 상태에 종지부를 찍고, 교황의 영향력 아래 움직이는 단일한 유럽이라는 개념을 성립시켰습니다.
1,000년 무렵 유럽은 정치·문화적으로는 교회가 지배하는 기독교 사회이며, 경제적으로는 봉건제 사회인 중세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중세사회는 기도하는 사람, 전투하는 사람, 노동하는 사람으로 구성되었는데, 기도하는 사람은 교회 성직자이며 전투하는 사람은 영주, 기사 등 봉건귀족입니다. 이들은 유한계급으로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동하는 사람들, 즉 농민에 의해 부양되었습니다.
농민은 노새처럼 일만 할 뿐 아무 발언권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팔려 다니는 노예는 아니었으나 토지에 묶여 있었고, 영주가 장원을 팔면 농민도 토지와 함께 새 주인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중세에는 인구의 90퍼센트가 농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경제기반도 농촌에 있었으나, 농촌에서 봉건제가 확립되어 생산력이 증가한 11세기경에 잉여생산물의 교환이 발생하고 자연스럽게 도시가 성장했습니다.
상업과 도시의 부활은 11세기경에 새로 전개된 원거리 교역으로 촉진되었습니다. 중세도시는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면 크지 않은데, 인구 5만 명 이상의 대도시는 손꼽을 정도이고 대부분 인구 2만 명 이하였습니다. 도시 주민은 외부로부터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성곽(bourg)으로 둘러쳐진 도시에 모여 살았기 때문에 부르주아(bourgeois)라 불렸습니다.
도시 주민은 상인과 수공업자로 구성되었으며 이들은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조직인 길드의 일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길드는 중세도시의 기본 경제단위인데 도시별로 상인과 수공업자가 직업상의 권익을 도모하기 위해 결성한 동업조합입니다. 상인 길드에는 그 도시의 상인 거의 모두가 가입했으며, 수공업자 길드는 도시마다 직종별로 결성되었습니다.
중요한 길드로는 직조공, 염색공, 석공, 도장공, 금속세공인, 대장장이, 제과기술자, 푸주한 무두장이, 비누제조공 길드가 있고 이발사를 겸한 외과의사도 길드를 결성했습니다. 심지어는 도둑과 거지도 합법적인 것은 아니지만 조합을 결성하고 있어서 외부에서 온 거지는 그 도시에서 구걸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길드는 여러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길드는 의식주에 관련되는 필수품을 비롯하여 주요 제품에 대해 도시별로 생산과 판매를 독점하고, 길드 조합원은 대외적으로는 배타적이지만 조합원끼리는 공평한 권리를 누렸습니다.
길드는 공급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기능이 우선이었지만 제품에 대해 일정한 품질을 보증하고 무분별한 가격변동과 폭리를 막고 안정된 가격을 유지하여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기능도 있었고, 규정과 기준을 어긴 회원에게는 벌금 같은 제재가 가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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