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성당에서는 예수의 수난이나 성자의 생애를 토대로 한 종교극 공연이 행해졌습니다. 중세 교회는 처음에는 그리스·로마 시대에 번성했던 연극을 금지시켰으나 무지한 민중에게 교리를 가르치는데 연극이 쓸모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10세기경 교회에서 부활된 연극은 사람들에게 기독교 교리를 가르치기 위한 단순한 대화에 지나지 않았으나 사람들이 이를 반기면서 점점 장황하게 변했습니다. 나중에는 교회를 벗어나 교회 앞 광장이나 장터 같이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 공연되었으며 규모도 커지고 오락적 성격도 짙어졌습니다. 연극의 내용은 기독교 성인들의 생애나 성서에 나오는 일화에 바탕을 두고 있었지만 중세 사람들은 외설적인 농담이며 잔인한 장면 같은 세속적 즐거움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현대인이 다소 이해하기 힘들든 중세인의 정서는 성당의 기둥머리와 문설주를 장식하고 있는 조각과 부조에서 거룩한 성모와 사도들이 상상 속의 기이한 괴물이며 외설적인 장면과 나란히 표현되어 있는 것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중세의 관객은 연극이 쓸데없는 곁가지로 마냥 길어져도 재미만 있으면 개의치 않았기 때문에 공연은 며칠씩 걸리기도 했다 합니다.
15세기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서 공연된 종교극은 대사가 무려 34,000행이나 되었습니다. 중세에는 직업적인 연극배우가 없고 도시 주민이 길드 단위로 연극에 직접 참여했는데, 이를테면 노아의 방주는 조선공 길드가, 바벨탑은 목공 길드가, 요나와 고래는 어부 길드가 맡았습니다.
때로는 각 길드가 독자적으로 공연하기도 했으며, 포도주 상인들은 가나 마을의 혼인 잔치를, 생선 장수들은 요나 이야기나 시몬의 고기잡이 기적을, 빵 제조업자들은 최후의 만찬을 공연했습니다. 직업적인 배우는 아니었지만 연극배우들은 길드로부터 약간의 보수를 받았습니다. 중세 영국의 한 공연 계산 장부에는 ‘하느님 역 배우에게 20펜스, 악마 역에게 21펜스, 닭 우는 시간을 알리는 파우스톤에게 3펜스, 그리고 선악을 판단한 두 마리 벌레 역에 6펜스’를 지불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학
중세시대의 유일한 세속예술은 문학이었습니다. 이 시기의 문학은 음악과 분리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시인 겸 음악가인 트루바두르는 관능적 사랑을 주제로 한 가사에 곡을 붙인 짧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11세기경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 서정적인 연애시가 유행하고 있는 동안 북부지방에서는 기사들의 무훈을 과장되게 부풀려서 칭송하는 긴 노래가 불리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인 「롤랑의 노래」는 사라센인과 맞서 싸우는 샤를마뉴 대제와 그 기사들의 무용담을 노래한 서사시로 후세에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집니다. 당시 기사의 세계에서는 십자군 원정을 다녀온 사람, 장차 전쟁에 나가려 하는 사람이 많았던 까닭에 무훈시가 크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11세기 이전까지 프랑스 남부와 북부는 서로 사용하는 언어조차 다른 이질적인 지역이었으나 십자군 원정이 시작되면서 교류가 활발해졌습니다. 12세기에 남부 지방의 연애 서정시가 무훈시에 접목되어 기사의 무공과 귀부인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의 두 축으로 하는 로망이 생겨났습니다.
오늘날 프랑스어에서 로망은 소설을 의미하지만 근대 소설과 중세의 로망은 완전히 다른 장르입니다. 음유시인, 또는 음유시인이 데리고 다니는 악사들은 제후의 연회에 나가 악기 반주에 맞춰 큰 소리로 로망을 읊었습니다. 이 운문소설에는 언제나 쌀쌀맞고 고귀한 귀부인을 연모하는 기사가 등장하므로 로망스, 즉 로맨스는 오늘날에도 연애, 또는 연애 이야기를 가리키는 말로 남았습니다.
로망은 승려들이 사용하는 라틴어도 아니고 민중들이 사용하는 지방어도 아닌 상류층 언어로 만들어졌는데, 즉, 로망은 작품을 가리키는 말이자 거기 사용된 언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로망에서 표현되는 연애는 대개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으로 신분이 낮은 기사가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귀부인을 사모하는 경우가 보통입니다.
이를테면 「수레를 탄 기사 랑슬로」에서 랑슬로는 자신의 모시는 아서왕의 왕비 게니에브르를 사모하고, 「트리스탄과 이즈」에서 트리스탄은 숙부 마크왕의 왕비 이즈(이졸데)를 사모합니다. 귀부인은 사랑을 구하는 기사에게 냉정하게 굴며 어려운 일을 주문하고, 기사는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귀부인의 온갖 변덕에 복종합니다.
로망에는 요정, 마술에 걸린 사람, 괴물, 용 같은 상상적 측면도 많이 포함되어 있지만 모험과 연애라는 로망의 두 주제는 중세 기사들이 처한 사회적 현실을 반영합니다. 봉건 귀족은 영지를 분할하지 않으려고 맏이를 제외한 다른 아들의 결혼을 엄격히 제한했습니다.
맏아들이 아닌 귀족 청년들은 성직자가 되거나 영지가 딸린 처녀 혹은 과부와 결혼하여 자립할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제후는 충성도에 따라 하급기사에게 적당한 배필을 구해줌으로써 이들을 통제했습니다. 「사자의 기사 이뱅」에서 이뱅은 어려운 시험을 거친 후, 성의 여주인과 결혼합니다. 하지만 제후로부터 봉토도, 배필도 받지 못하고 부친으로부터 상속도 받지 못한 기사들이 더 많았는데, 이들은 한몫 잡으려는 희망을 품고 십자군에 출전합니다.
로망은 한편으로는 봉건귀족의 오락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잔인한 호색한인 기사 집단을 순화하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에 교회는 세속적인 로망을 눈감아주었습니다. 로망에서 유래하여 나중에는 부자연할 정도로 복잡하게 발전해간 사랑놀음과 여성에 대한 예의범절은 기사들을 지속적으로 의무와 봉사 속에 가두어두는 장치였습니다.
젊은이들은 이러한 규칙을 습득하는 과정을 통해서 주군에게 충성하고 자신의 폭력성을 조절할 줄 아는 기사로 만들어졌고, 프랑스 북부 지역에서 태어난 로망은 유럽 전체로 퍼져나갔습니다. 독일에서는 12세기말에 미네징거가 로망을 받아들였고, 스페인과 이탈리아 북부에서도 음유시인들이 궁정식 사랑을 주제로 작품을 썼습니다.
13세기에는 산문체 로망도 나타납니다. 중세 시대에 가장 인기가 있던 「골의 아마디스」라는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까지 애독되면서 수많은 모방작과 가짜 판본을 낳기도 했습니다.
17세기 초 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Saavedra)는 돈키호테라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거역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주인공을 만들어냈습니다. 돈키호테는 이미 기사의 시대가 지나갔는데도 아마디스가 한 말이며 일거수일투족을 깡그리 외우면서 여전히 기사도에 집착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