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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예술에 대하여(1) [미술과 음악]

by 미스티스테이션 2023.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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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중세 예술

 

중세 후기인 1,000년에서 1,500년 사이에 유럽에서는 로마네스크와 고딕, 두 예술양식이 발전했습니다.

로마네스크(Romanesque) 예술은 11-12세기에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부 유럽에서 융성했고 고딕(Gothic) 예술은 12-16세기에 프랑스·영국을 중심으로 서북부 유럽에서 융성했습니다.

 

중세예술은 무엇보다도 신을 위한 예술, 즉 종교예술입니다. 수많은 성당이 건축되고 성당에서는 예배음악이 울려 퍼지고 종교극이 공연되었습니다. 세속예술은 고딕 시대에 영주의 궁성을 중심으로 세속 문학이 나타난 게 전부이며, 교회는 가장 든든한 예술수요자로 중세 예술의 내용을 결정했습니다.

 

세속 영주와 도시 주민도 부를 지녔지만 그들은 성당을 짓고 치장하는데 그것을 바쳤을 뿐 자신에게 돌리지 않았습니다.

봉건귀족은 요새처럼 투박한 성에 살았으며 도시 상인과 수공업자는 농민과 다름없는 누추한 집에서 검소하게 살았으며, 오로지 신의 영광을 빛내기 위해 지어진 집인 성당만이 정성을 다해 치장되었습니다.

 

로마네스크 예술이 농업 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농촌 예술이라면 고딕 예술은 상업과 수공업 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도시 예술입니다. 로마네스크 성당의 건축주는 수도원이고 건축에 필요한 재원은 부속 영지의 농민들에게 부과한 공납과 부역, 봉건귀족이 바친 재물에서 마련되었습니다. 고딕 성당의 건축주는 도시를 관할하는 교구의 우두머리 성직자이지만 재원을 조달하는 데는 도시 주민의 경제력이 한몫을 했습니다.

 

 

미술

건축은 중세 예술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예술장르로 특히 교회 수요에 기반을 둔 성당 건축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고대의 신전과 마찬가지로 성당은 공동체의 목표에 봉사하기 위한 공공 건축의 성격을 지니며, 회화와 조각은 건축의 부속물로 존재했습니다.

 

필사본의 삽화인 세밀화를 제외하면 중세의 모든 미술장르는 건축의 틀 안에서 존재했습니다. 중세 말에 이르러 비로소 회화, 조각이 건축과 분리되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는데, 중세의 문화적 힘은 성당 건축에 집약되어 있다. 그래서 로마네스크와 고딕은 성당건축 양식을 가리키는 용어이지만 그대로 이 시대의 예술양식을 규정하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로마네스크 건축은 대부분 수도원의 감독 아래 지어진 것으로, 양식상으로 볼 때 로마식 둥근 아치를 많이 사용한 점, 두 개의 둥근 볼트를 십자모양으로 교차시킨 교차형 볼트를 쓴 점, 또 아치 때문에 생긴 바깥으로 작용하는 큰 힘을 견디도록 굵은 기둥과 두꺼운 벽을 만든 점이 특징입니다.

 

로마네스크 건축은 높이가 낮고 수평적이며 창문이 거의 없고 내부가 어둡습니다. 로마네스크 성당이 육중하고 견고한 안정감을 지닌 데 반해 고딕 성당은 우아하고 솟아나는 듯한 상승감을 지닙니다. 로마네스크 성당은 대개 농촌을 배경으로 하지만 고딕 성당은 도시적입니다. 고딕 건축은 파리 근교 생드니 수도원에서 처음 나타난 것인데, 이 수도원 개축 작업에서 첨두아치(pointed arch)와 리브 볼트(rib vault)가 적용되었습니다.

 

그 뒤를 이어 건축된 파리 도트르담 성당에서는 이 두 가지 기술혁신에 공중 버팀벽(flying buttress)이 추가되었고 이로써 고딕 양식이 완성되었습니다. 고딕 성당에서는 둥근 아치 대신 뾰족한 아치를 써서 꼭대기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힘을 여러 방향으로 분산시켰고 또한 리브(갈빗대)를 붙인 볼트는 천장의 무게와 바깥 방향으로 미는 힘을 크게 줄여주었고 무게의 작용점을 벽이 아니라 벽 사이에 있는 기둥으로 옮겼습니다.

 

기둥이 받는 리브 볼트의 미는 힘은 반원형 연결기둥인 공중 버팀벽을 지나 바깥쪽 기둥에 전달되어 완전히 흡수되도록 했습니다. 첨두아치와 리브 볼트 공법을 이용하여 고딕 건축가들은 성당의 천장을 40미터 이상 높일 수 있었는데, 이처럼 높은 천장은 건물에 수직으로 상승하는 분위기를 줍니다.

 

리브와 기둥을 결합한 덕분에 기둥 사이에 있는 벽은 하중을 받지 않게 되었고 벽을 터서 큰 창문을 내고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를 끼울 수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색유리를 공들여 이어 붙여 성서에 나오는 일화와 성인들을 묘사했습니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 설치된 거대한 방사형 창에는 성모 마리아와 구약성서에 나오는 인물들, 예수와 12 사도들이 배치되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가 나타낼 수 있는 색은 백, 청, 황, 녹, 적, 진홍으로 제한되어 있었고 유리조각을 창틀에 납으로 이어 붙이는 제작상의 어려움 때문에 거기 표현된 인물은 부자연하고 추상적인 형태가 되어버렸습니다만, 색유리에 빛이 투과했을 때의 효과는 환상적이어서 성당 내부를 천상의 세계처럼 신비스러운 분위기로 만들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된 그림은 까막눈이 대부분인 당시 일반 신자들에게 그림 성서 구실을 했다고 합니다. 파리 남쪽에 있는 샤르트르 성당은 기둥과 기둥 사이가 모두 스테인드글라스로 채워져서 벽면 전체가 마치 커다란 그림책과 같이 보입니다. 교역이 활발한 도시를 끼고 있어서 자금력이 풍부한 교회는 다른 도시보다 더 근사한 성당을 짓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 수직선이 강조된 높은 천장, 스테인드글라스로 둘러싸인 고딕 성당이 유럽 대륙을 뒤덮었습니다. 성당 건축열기가 가장 심했던 12세기말부터 13세기말까지 100년동안 프랑스에서만 80개의 성당이 세워졌습니다.

 

 

음악

 

중세 음악은 신에게 봉사하기 위한 종교음악으로, 기독교의 찬송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성당 건축이 십자가형 평면에서 출발하듯이 미사음악은 그레고리오성가(Gregorian chant)의 구조에서 출발합니다. 중세 초기 수도사들이 교황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세(590년~604년 재위)의 명령을 받아 각지에서 마음대로 불려지고 있던 교회의 전례음악을 수집하고 체계화했으니 그것이 그레고리오 성가입니다.

 

그 후 오랫동안 그레고리오 성가는 교회에 의해 인정된 유일한 음악이었습니다. 교회는 기악을 세속적인 것으로 천시했기 때문에 교회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기본적으로 무반주 성악입니다. 나중에도 교회에서는 오르간을 제외하곤 악기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딕 시대가 시작되는 12세기에 종교음악에도 혁신이 나타게 되는데, 성당은 수도원을 대신하여 음악 활동의 중심지가 되고, 유럽에 건축된 수많은 성당은 음악에 배경을 제공했습니다.

 

고딕 성당이 모습을 드러내자 높은 천장 아래 장엄하게 울려 퍼질 새로운 미사 음악이 필요했습니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성가대 지휘자 페로탱과 레오냉은 4성부로 된 오르가눔(organum, 원래 악기, 특히 오르간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그레고리오 성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다성음악, polyphony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음)을 작곡했습니다.

 

그레고리오 성가가 화성이나 반주가 없는 단선율 음악인데 비해 12세기에 작곡된 오르가눔은 둘 이상의 독립적인 성부로 이루어진 다성음악이었습니다. 그레고리오 성가가 미묘한 선율과 리듬, 그 위에 실리는 가사를 중요시했다면, 오르가눔은 수학적으로 배분된 리듬과 질서 있게 구조화된 화성을 중요시했습니다. 이 새로운 미사음악은 수학적 질서 위에 쌓아 올려진 고딕 성당과 잘 어울렸고 그 후 고딕 건축양식과 함께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퍼져가게 됩니다.

 

12세기 이후 봉건귀족의 궁성을 중심으로 세속음악이 발전했습니다. 트루바두르, 트루베르, 마이스터징거 같은 세속 음악가는 종종 반주가 따르기도 했지만 단성음악의 전통을 계속 지켜나갑니다. 그렇지만 14세기경 종교음악과 세속음악을 가르는 엄격한 구분이 흐려지고 둘이 뒤섞이는 경향이 나타나게 됩니다.

 

14세기 프랑스에서는 다성 세속음악이 엄청나게 증가했는데 이 시대에 널리 퍼진 이러한 음악을 아르스 노바(Ars Nova,‘새 예술’이라는 뜻)라 불렀습니다. 아르스 노바는 종교음악과 세속음악을 음악이라는 하나의 장르로 통합시는데, 그 작곡가인 비트리나 마쇼는 성직자 신분이었으나, 교회음악과 세속음악 양쪽에서 이름을 얻은 최초의 음악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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