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예술의 경제적 이해(1)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접근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술을 그 자체의 고유한 논리에 따라서 이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을 경제·사회 환경 속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전자를 예술에 대한 내적 접근방법이라 한다면 후자는 외적 접근방법이라 할 수 있는데, 문학, 미술, 음악, 연극, 영화 등 각 장르의 예술을 이해하는 방법은 대체로 내적 접근이었습니다. 내적 접근방법은 예술을 이해하는데 기본이 되지만 그것만으로 예술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는 부족합니다.
예술활동은 다른 인간활동과 떨어져 존재할 수 없고 항상 경제·사회와 관련을 맺으며 행해지고 있습니다. 예술의 내적인 요구가 없더라도 경제·사회 환경이 변화하면 예술은 그에 상응하는 변화를 일으킵니다. 근대 소설이나 현대 영화처럼 새로운 예술장르가 생기기도 하고 번성하던 예술장르가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은 예술의 내적인 논리만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근대사회에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인식이 나타난 후 오늘날까지 예술이 모든 외부 환경으로부터 독립적이라는 관념은 여전히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술이 경제 환경에서 독립되어 있다는 관념은 예술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이 그것으로 생활을 영위하고 예술작품이 소비자의 선택을 둘러싸고 다른 재화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예술과 경제의 연관성은 특별한 이론적 근거를 들지 않아도 예술사의 많은 사례가 입증합니다. 예술의 내용은 경제와 연관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회화 작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구석기 시대 동굴 벽화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서남부의 동굴에서 발견된 벽화에는 들소, 사슴 같은 동물들이 움직이거나 누워 있는 모습이 정확하고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수렵이 주된 경제활동이었던 구석기 사회에서는 예술의 내용도 수렵생활에 관한 것입니다.
반면, 식물 그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드물게 발견되는 그림도 지극히 간략하고 모호하게 그려져 있는데, 이는 농사를 짓고 식물을 경작하는 일이 아직 중요한 경제 생활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예로 근대소설을 들 수 있습니다. 영국에서 근대소설이 등장하는 18세기에 프랑스에서도 소설이 상당히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는 경제적 환경이 달랐습니다. 영국에는 시장제도가 확산되고 있었지만 프랑스에는 여전히 왕과 귀족의 후원제도가 존속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경제적 차이는 소설 내용에 반영되어서 영국 소설은 역동하는 중간계급의 생활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반해 프랑스 소설은 비사실적인 우화와 귀족의 생활을 반영하는 에로티시즘의 세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예술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형식도 경제와 연관됩니다. 원시 예술에서 음악, 시, 무용이 분리되지 않은 채 뒤섞여 있는 것은 생산력이 극히 낮은 물질생활이 간단한데서 빚어진 현상입니다. 생산력이 향상되고 노동 분업이 진전되면서 음악, 시, 무용은 별개의 장르로 나누어지는데 예술 양식도 그 시대의 경제 사정을 반영합니다. 예술가의 개성과 독창성을 강조하는 낭만주의 양식은 18세기경 처음 성립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시장에 기반을 둔 근대사회가 성립되고 사회 각 부분에서 경쟁이 기본원리로 자리잡았습니다. 이와 함께 예술에서도 예술가 개인의 개성과 독창성을 중시하는 관념이 형성되었고 새로운 예술양식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예술에 대한 내적 접근과 마찬가지로 외적 접근도 한계가 있고 그것만으로 예술의 전모를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외적 접근은 좋은 예술에 대한 평가 기준을 제시할 수 없는 약점이 있습니다. 일반 재화와 달리 예술작품의 가치는 심미적 특성에 의해 결정됩니다. 내용의 깊이와 양식의 독창성, 표현의 풍부함 같은 심미적 가치는 경제적 가치와 비례하지도, 그것으로 환원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경제와 연관하여 예술을 다루는 외적 접근은, 내적 접근을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완하여 예술을 보다 폭넓게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접근방법
한 사회속에서 예술과 경제는 어떤 위치에서 어떤 관련을 맺고 있을까요? 사회는 경제, 정치, 문화의 세 가지 영역으로 구성됩니다. 예술은 사상, 윤리, 종교 등과 함께 문화 영역에 속하며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구성하는 경제, 정치, 문화의 세 영역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는 노예를 생산 도구로 쓰는 경제체제였습니다.
이러한 체제가 유지되려면, 정치적으로 노예는 참정권을 가져서는 안 되고, 문화적으로 노예는 날 때부터 주인과 다른 인간이고 주인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한다는 사상과 윤리가 존재해야 합니다. 사회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 발전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세 요소는 정태적 조응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 서로 작용하고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조응관계에 관해 카를 막스 (Karl Marx)는 ‘토대에 기초해 정치적 상부구조가 생겨나고, 토대에 상응해 일정한 형태의 사회의식이 발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여기서 토대는 경제 영역이며, 사회의식은 문화 영역입니다.
막스에 따르면 토대인 경제 영역은 문화영역이나 정치 영역을 규정하는 지위에 있습니다. 인간 생활은 일차적으로 물질적 조건에 의지하며, 정치·문화 같은 정신 활동은 물질적 활동에 기반을 둔 이차적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번영은 한 사회의 문화·예술이 발전하는 조건입니다. 고대 그리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17세기 프랑스, 19세기 영국, 20세기 미국 등 경제 중심지는 곧 문화 예술 중심지입니다.
문화·예술영역과 경제영역 간에는 긴밀한 조응관계가 존재하고, 역사 속에서 볼 때 하나의 경제체제가 있으면 그것에 상응하는 문화·예술이 존재하나, 예술과 경제의 관계는 단순하지도 일방적이지도 않습니다.
예술은 그 자체의 내적 논리에 따라 발전하고, 예술 발전에는 경제적 요소 외에도 여러 다른 영역의 요소가 광범하게 영향을 미칩니다. 예술이 경제 변화를 수용하지 않고 그것과 대립하고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예술의 혁신이 경제 변화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예술과 경제는 상호 영향을 고려해 그 시대의 구체적 맥락에서 관계가 파악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접근방법으로 예술을 경제와 연관하여 설명합니다. 경제 활동은 재화를 생산하여 공급하는 측면과 그것을 수요하여 소비하는 측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예술을 경제와 연관하여 설명하는 것은 예술을 생산과 수요의 측면에서 파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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