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수요자(1)[도시귀족]

by 미스티스테이션 2023. 3. 22.
반응형

 

4.1. 르네상스 예술수요자

 

르네상스 예술은 15세기 이탈리아를 무대로 합니다. 중세 후기에 도시가 가장 먼저 부활한 곳이 이탈리아였습니다.

상공업이 발달하여 여러 도시가 융성하고, 각 도시에서는 성공한 상인들이 조합을 조직하여 시정에 참여하고 공동 이익을 도모했습니다.

 

시간에 지나면서 이러한 자발적 조합들은 자치도시를 형성하는데, 유럽의 다른 도시는 그 지역을 지배하는 봉건 영주로부터 자치권이나 독립을 얻는데 이탈리아 도시만큼 성공하지 못했고, 도시의 성장도 그만큼 지체되어 있었습니다.

14세기 초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도시인구가 총인구의 3분의 1 가까이 될 정도로 도시화가 진전되어 있었습니다. 1500년경 유럽에서 인구 6만 명 이상인 10대 도시 가운데 이탈리아 도시가 나폴리, 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 제노바, 이렇게 5개나 들어 있습니다.

 

르네상스가 시작될 무렵 유럽은 재난으로 뒤덮였을 때 입니다. 14세기 초 기근이 유럽을 휩쓸었고, 쇠약해진 사람들을 흑사병으로 덮쳤습니다. 흑사병이 지나간 15세기 초 유럽 인구는 1세기 전에 비해 3분의 1이 줄게 됩니다. 또한, 프랑스와 영국은 1337년에서 1453년까지 백년전쟁으로 시달렸습니다.

 

가뜩이나 살기 어려운 농민들은 전쟁과 질병으로 한계상황에 이르렀고 도처에서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1358년 자크리의 반란, 1381년 와트 타일러의 반란 등 농민 반란이 계속되었고 봉건영주들은 이를 잔인하게 진압합니다.

유럽이 이러한 재난에서 회복되는 과정은 곧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는 과정이기도 한데, 중세를 지배하던 교회 세력이 약해진 대신 국왕의 권력이 성장하고, 지방 봉건 영주가 몰락한 대신 중앙집권적 국민국가가 성장하게 됩니다.

 

봉건적 질서가 해체되고 새로운 질서로 이행하는 과도기의 혼란은 상당히 오래 계속되어, 봉건적 질서가 다른 곳에 비해 견고하지 못한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이러한 재난에서 재빨리 벗어나 경제적 번영을 이룩했습니다. 유럽 다른 나라들은 14~15세기에 걸쳐 중세 말의 혼돈 속에 있었으나 이탈리아는 찬란한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습니다. 르네상스는 피렌체에서 시작되어 베네치아를 비롯한 이탈리아 각 지역을 거쳐 유럽 전역에 퍼지게 됩니다.

피렌체는 13세기 후반부터 부상했으며이 도시를 성장시킨 것은 교황청 재정 대리인의 역할과 함께 수출용 고급 모직물의 생산이었습니다.

피렌체는 프랑드르에서 들여온 모직물을 완제품으로 가공하거나 영국산 양모를 원료로 고급 모직물을 생산했는데, 14세기 초 피렌체에는 양모 길드에 속한 장인의 수가 200명 가까이 되었고 고용된 노동자수는 30,000명에 이르게 됩니다.

 

도시귀족

 

이탈리아 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은 총 세 부류였습니다. 첫째 부류는 도시귀족으로 특권을 가진 시민입니다. 이들은 동방무역으로 돈을 번 대상인이며 도시 주변 농촌에 토지를 지닌 영주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정치적 유력자이자 부유한 사업가로서 토지 수입에만 기대고 있는 봉건귀족과는 달랐습니다.

 

둘째 부류는 수공업자와 소상인 같은 일반시민들이었습니다. 이탈리아 도시에서는 수공업자의 힘이 약했는데, 베네치아나 제노바는 이렇다할 수공업이 없었다고 합니다. 피렌체에서는 모직물공업이 번성하고 있었지만 수공업자 대표의 정치 참여는 제약되었습니다.

 

마지막 셋째 부류는 하층시민으로 시민권을 실질적으로 갖지 못한 직인, 도제를 비롯하여 기타 하층민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피렌체에서는 도시귀족에게 부가 집중되어 빈부격차가 매우 컸는데, 1427년 자료에 의하면 가장 부유한 상위 1퍼센트(약 100 가구)가 자산의 4분의 1을 소유했고, 상위 2퍼센트(약 200 가구)가 공채의 60퍼센트를 소유했다고 합니다.

 

스트로치, 바르디, 메디치, 알베르티, 알비치, 페루치, 이렇게 6개의 도시귀족 가문이 피렌체 경제를 좌지우지했습니다.

피렌체는 행정적으로 주변 농촉지역을 포함하지만 농촌 인구는 정치에서 제외되었습니다. 10만 명 인구 가운데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계층은 3,000명의 시민이는데, 피렌체는 표면상 시민 공화국이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부유한 도시귀족이 정치를 지배했습니다. 1434년부터 피렌체를 지배한 가문은 상인이자 은행가인 메디치(Medici) 집안이다.

 

메디치 집안은 15세기말까지 피렌체에 세 개의 모직물 제조공장과 무역금융상회를 소유했고, 로마 교황과 각 나라 왕을 상대로 은행업을 해서 막대한 재산을 모았습니다. 메디치 집권 시대를 연 코시모(Cosimo de’ Medici,1434년~1464년 집권)는 30년 간 피렌체를 지배하여 ‘조국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코시모의 손자 로렌초(Lorenzo de’ Medici,1469년~1492년 집권)는 ‘위대한 자’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그의 통치 시대에 피렌체가 의 가장 전성기 시절로 남게 됩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도시국가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와 유사한 점이 있는데, 피렌체나 아테네, 모두 대외 무역에 경제적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도시국가는 주변 농촌지역까지 지배했고 소수의 시민들만 정치에 참여했습니다.

이 도시들은 국민적 통일을 바탕으로 한 국민국가가 아니라 각 지역에 할거한 도시국가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피렌체의 도시귀족과 아테네의 시민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피렌체의 도시귀족은 무역업, 은행업을 하는 사업가로 그들의 지위는 무엇보다 경제적 성공에 기반을 두고 있는 데에 반면 아테네 시민은 경제활동과 무관한 유한계급이었습니다.

메디치 집안은 코시모에서 로렌초까지 60여 년 동안 적극적으로 예술 후원을 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과시적 소비 욕구 때문에 예술가를 후원한 것이 아니고, 스스로 예술에 열정을 갖고 심취했습니다.

메디치 집안뿐만 아니라 15세기에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를 지배하던 다른 부유한 집안도 예술후원에 열성적이었습니다.

밀라노의 비스콘티(Visconti) 집안과 스포르차(Sforza) 집안, 만토바의 곤차가(Gonzaga) 집안이 경쟁적으로 예술을 후원했으며, 이들은 예술가에게 작품 제작을 의뢰하고 궁정화가와 궁정음악가를 고용했습니다.

 

이들 도시귀족 가문 외에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일반 시민도 자기 집을 장식하기 위해 예술가로부터 작품을 주문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수요자인 도시귀족이나 시민은 중세 봉건귀족보다 훨씬 유식했는데, 봉건귀족은 전쟁을 직업으로 하는 전사로 교양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합니다.

13세기까지도 이들 가운데에는 문맹이 수두룩했다. 반면 도시귀족은 유능한 사업가로서 합리적 성향을 지녔으며, 자신의 수완과 냉정함에 의해 경쟁자를 누르고 권력을 쟁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문서나 법률에 대한 지식을 갖추었으며 정치와 과학에도 관심이 있었고, 경제활동이 번창하면서 도시에는 법률가, 공증인, 서기, 관리 등 지식을 밑천으로 먹고사는 계층이 형성되었습니다.

 

도시귀족은 책과 인쇄물에 익숙하고 지식의 유용성과 중요성을 잘 알기 때문에 학자를 우대하고 서적 수집에 열을 올렸습니다. 이와 같이 새로운 경제적 기반과 새로운 성향의 예술수요자가 등장함으로써 르네상스라는 예술 혁신이 일어나게 됩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