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가
중세 종교극에는 직업 배우가 출연하지 않았으나, 르네상스 시대에 세속 연극이 발전하면서 직업 배우가 등장했습니다.
창작 예술가의 지위는 이 시대에 상당히 나아지지만 공연 예술가는 미천한 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가 활동한 16세기말 영국에서 연극 배우는 귀족에 고용된 하인의 신분이었습니다.
극작가로 성공하고 극장 소유주가 된 셰익스피어도 처음 연극배우 시절에는 궁내 대신 휘하의 하인 신분이었는데, 귀족에 고용되어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연극 배우는 거지 또는 부랑자와 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예술가 개념
르네상스 시대는 예술가 개념이 처음 형성된 시대입니다. 이 당시 상류사회는 문화적으로 인문주의에 지배되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도시귀족이 모두 높은 예술적 이해력을 지닌 것으로 생각하거나 당시 예술작품이 모두 높은 수준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하찮은 일반미술가의 차이를 알지 못했습니다.
르네상스 미술의 방향을 지배한 사람은 이들이 아니라 지식인, 즉 인문주의 학자였습니다. 예술 수요의 증가로 경제적 기반을 구축한 미술가는 지위 상승을 위해 인문주의자를 지적 파트너로 삼았습니다. 인문주의자들은 미술가를 사상적으로 후원하고, 미술가는 이들의 평판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제작했는데, 미술가는 자신의 지위를 향상하기 위해 스스로 인문주의자가 되고 인문주의자를 미술의 심판자로 삼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는 원근법을 수학적으로 제시하고, 기베르티(Lorenzo Ghiberti)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는 회화 이론에 관한 논문을 썼습니다. 미술가는 자신이 하는 일이 시인의 일과 비슷한 인문주의 예술로 취급받기를 원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화가가 수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시인의 ‘천재’에 필적할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미켈란젤로는 그림을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그리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미술이 융성하고 미술가는 지위가 향상되어 결국 인문주의자 시인과 동일한 지위로 올라서게 되면서. 미술가는 시인과 동질적인 집단으로 결합하고, 이들을 하나로 묶는 예술가라는 개념이 생겼습니다.
르네상스 이전에는 비천한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기술자와 고상한 정신활동에 종사하는 시인을 예술가라는 개념으로 같이 묶을 수 있다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미술가의 지위가 시인과 동렬인 예술가로 격상하면서, 미술가는 종래 같은 부류였던 기술자(장인)와는 다른 부류로 간주되었습니다.
미술가의 지위가 향상되면서 개인주의적 작업 태도도 나타나게 됩니다. 미켈란젤로는 중세 길드의 장인 미술가와 달리 도제를 두지 않고 혼자서 많은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길드 제도에서 미술가 작업은 공동 작업인데, 미술가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을 완성하는 경우는 없고 장인 미술가와 여러 도제가 할 일을 나누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혼자서 작품을 제작하는 개인주의 작업방식은 전근대적 길드의 원리를 벗어난 것인데, 개인주의 작업방식은 사람들의 관심을 미술작품에서 미술가로 옮아가게 만들었으며 ‘천재 미술가’라는 개념을 낳았습니다. 뛰어난 예술가는 천재로 간주되고, 예술작품이 아니라 예술가 자체가 사람들의 존경과 숭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천재 미술가에게 관심과 숭배를 표하면서 미술가 전기가 나타났습니다. 16세기에 바사리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1550)이라는 방대한 전기를 남겼습니다. 고대 그리스 후기에는 일시적으로 이름 있는 미술가의 전기가 나타나지만, 르네상스 이전까지 예술가에 관한 전기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일개 기술자인 예술가의 삶에 대해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떄문입니다. 개인전기는 위대한 성인이나 왕과 영웅들만 누릴 수 있는 영예지만, 바사리는 자신의 책에서 미켈란젤로를 ‘신이 세상에 보내 자신의 일을 대신하게 한 사람’이라고 칭송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술가란 훈련과 숙련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질을 천부적으로 타고난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한 전기 작가는 ‘귀족들이야 황제의 능력으로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화가를 내는 것은 오직 신 이외에 있을 수 없다’고 썼습니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예술작품은 숭배하지만 그것을 만든 예술가는 경멸합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에 예술가를 숭배하는 태도가 나타나면서 예술작품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습니다. 완성된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창작과정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사람들이 미술가의 개인적 표현 방식에 흥미를 가지면서 소묘, 초안, 스케치처럼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에 대한 애호와 수집이 시작되게 됩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예술가 개념은 아직 불완전했습니다. 거장 예술가만이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후원자로부터 자유와 독립성을 확보할 기회가 있었는데, 예술가 숭배 역시 이들에게 한정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예술가 전체를 숭배한 것이 아니라 특정 예술가의 사회경제적 성공을 숭배한 것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대다수 미술가는 여전히 길드의 제약 속에서 공동작업에 종사하는 장인이며, 그들은 작품을 주문하는 후원자보다 낮은 지위에 있고 천대받았습니다. 그림 그리는 일은 여전히 비천한 직업이고 화가는 중하층 계급에서 충원되었습니다. 유명한 예술가도 작업 경비를 딴 곳으로 빼돌리지 않나 의심하는 후원자에게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야 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합니다.
라파엘로의 스승 페루지노(Perugino)는 값비싼 청색 안료 울트라 마린을 남용하지 않을까 의심하는 후원자에게 붓을 헹군 물까지도 버리지 않고 대야에 모아두었다가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전근대 예술가는 자기가 공들여 만든 작품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후원자에 고용되어 주문에 따라 작품을 제작하면 그 작품은 후원자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예술가 일반이 사람들부터 존중받고, 예술가가 ‘천재’를 지닌 존재로 자부심을 갖고 직업에 종사하는 것은 개인주의에 기반을 둔 근대사회가 형성된 후의 일입니다. 미켈란젤로는 예술가로서 전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높은 지위에 도달하지만 예술가라는 직업은 거기에 걸맞지 않은 천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편지 겉봉에 ‘조각가 미켈란젤로’라고 써 보낸 조카에게 그렇게 하지 말고 ‘미켈란젤로’라고만 쓰도록 지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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