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르네상스 예술
르네상스 예술의 성격
예술사에서 르네상스 시대만큼 다양성이 존재한 시기는 드뭅니다. 로마 교황청의 종교 예술수요와 새로 등장한 이탈리아 도시귀족의 세속 예술수요가 경쟁하고 있었고, 부르고뉴 공국 같은 전통 봉건귀족도 아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르네상스 예술은 이러한 다양한 갈래의 예술 수요를 반영하여 다양한 경향을 나타내는데, 이러한 경향 중 어느 것에 초점을 두는가에 따라 르네상스 예술의 모습은 다르게 파악됩니다.
어떤 이는 이 시기를 두고 저물어 가는 가을을 생각했습니다. 네덜란드의 역사 호이징하(Johan Huizinga)는 부르고뉴 공국을 무대로 「 중세의 가을」(1919)이라는 저서를 썼습니다. 그러나 이탈리아 도시 국가로 눈을 돌리면 이 시대는 약동하는 봄의 느낌을 줍니다.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봄」(1482)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분위기를 적절하게 나타내는 그림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세 예술 중 이탈리아 도시귀족의 예술이 중세와 구별되는 르네상스 예술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냅니다. 피렌체를 비롯한 이탈리아 도시국가에는 길드도 있고 성당도 있지만, 프랑스나 독일처럼 봉건귀족은 없었습니다.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상인은 사후의 천국보다 현세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들은 자신이 중세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낙관적이고 현세적인 세계관을 지닌 도시귀족에게 중세의 성당과 그곳을 채우고 있는 벽화며 조각은 어둡고 경직되어 보였습니다.
이탈리아 학자들은 고대 로마가 몰락한 때부터 당대 이전까지를 중세로 지칭하고 이 시기를 문화적 암흑기로 인식했습니다. 그러한 인식은 이미 14세기에 인문주의 학자이자 시인인 페트라르카에서 시작되었는데,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이 중세의 탈피를 표방했기 때문에 근대 예술이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르네상스는 재생 혹은 부흥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리나시멘토(Rinascimento)에서 온 말입니다. 이것은 고대 예술을 재생한다는 뜻인데, 르네상스인들이 중세와 다른 무엇을 찾다가 도달한 지점이 고대였습니다. 도시귀족에게 고대 그리스, 로마 사람이 이교도라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르네상스의 현세중심적, 쾌락주의적 성격은 고대적 가치와 통하는데, 사라진 고대를 통해 그들은 새로 태어난 것을 느꼈습니다.
전성기 피렌체는 의식적으로 제2의 아테네가 되고자 했습니다. 도시귀족은 고대 서적과 예술작품 수집에 열을 올리고 학자와 예술가는 찬란한 고대 문화를 재생시키는 것을 소명으로 삼았습니다. 이들은 균제와 비례를 통해 이상미를 표현하는 그리스 고전양식을 예술 규범으로 받들었습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은 중세의 탈피를 표방하지만 그것은 고대의 부활을 지향한 것이고 과거에 없는 새로운 예술을 지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세 탈피라는 점에서는 동시대 다른 지역의 예술과 다르지만 여전히 전근대적 예술이었습니다. 예술에서 근대성에 대한 인식은 근대사회가 성립한 후 낭만주의에서 처음 나타났습니다. 낭만주의에 이르러 비로소 예술가 들은 고대 콤플렉스에서 벗어났습니다. 이탈리아 도시귀족은 경제적으로 상업에 기반을 둔 점에서 봉건귀족과 다르지만, 정치적으로는 봉건영주와 마찬가지로 한 지역을 지배하는 영주였습니다. 이들은 봉건적 방식으로 도시국가를 지배하면서 근대적 국민국가의 형성을 지체시켰습니다. 도시귀족은 인문주의 정신을 소유한, 또는 그에 공감하는 사람들이지만 한편으로는 예술을 지배하고 예술가 위에 군림하였습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은 ‘시민적’이면서도 본질적으로 ‘긍정적’인 이중성을 지니는데 이것은 바로 도시귀족이 지닌 이중성과 연관됩니다.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는 도시귀족은 중세의 종교적 세계와 점점 멀어졌으며 자신이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세속 세계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습니다. 종교적 주제 일색이던 예술은 수요자의 새로운 태도를 반영하여 세속적 소재가 침투했습니다.
중세예술과 달리 르네상스 예술에서는 종교예술과 세속예술이 경합하는 양상을 띠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사회적 분업과 함께 물질적 생산의 혁신이 크게 진전되었습니다. 이를 반영하여 예술에서도 분화와 혁신이 이루어졌습니다. 회화와 조각이 건축에서 분리되었고 문학과 음악도 서로 분리되었습니다.
시가 전부인 문학에서 산문이 발전하기 시작했고 음악에서는 성악과 기악이 분화되었습니다. 예술적 혁신을 통해 오페라, 발레 같은 새로운 예술 장르가 등장했으며, 이런 모든 장르 가운데 르네상스 시대에 가장 현저한 발전을 이룩한 것은 회화입니다. 르네상스 시대는 ‘회화의 시대’로 불릴만합니다.
회화를 중심으로 미술생산이 번성함에 따라 미술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화하는 시기인데, 종래에는 미술이 육체노동의 대상으로 취급되고 기술의 범주로 인식되었으나, 차츰 정신노동의 대상인 문학과 같은 범주로 격상되었습니다. 이 결과 르네상스 시대에 문학, 음악, 미술을 모두 포괄하는 예술의 개념이 생겼으며, 종래에 하나로 취급된 예술과 기술은 서로 구별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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