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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예술 수요자에 대하여(고대 그리스)

by 미스티스테이션 2023.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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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고대 예술 수요자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 Homeros가 지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지금까지 전해지는 가장 오랜 서양 문학작품입니다. 그중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여 공을 세운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십 년 동안 바다를 표류하며 겪은 여러 모험을 노래합니다. 「오디세이아」에 묘사된 세이렌에 관한 모험은 이러합니다.

 

세이렌 Seirenes은 반은 새이며 반은 사람의 모습을 한 마녀로 자신이 사는 섬 근처를 지나는 뱃사람들을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유혹하여 그들이 탄 배를 난파시킵니다.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부하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고, 그들에게 힘껏 노를 저어 그곳을 빠져나갈 것을 지시합니다. 그들은 세이렌의 노래를 듣지 않아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모든 향락은 비생산적인 것이므로 향락에 탐닉하는 일은 생산 활동과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로서는 피해야 할 금기였지만 오디세우스 자신은 부하들과 달리 행동합니다. 그는 부하를 시켜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게 하고 세이렌의 노래를 듣습니다.

생산 노동에서 면제되어 있고 남의 노동을 지배하는 유한계급은 향락이 비록 파괴적일지라도 그것에 탐닉할 자유를 누립니다. 함께 사냥하고 함께 휴식하며 벽화를 그리고 감상했던 라스코 동굴의 원시 사회와 작별한 후, 예술과 노동은 이렇게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여가와 노동은 대립하게 되었고 예술은 여가를 가진 계급의 독점물이 되었습니다. 한 배에 타고 있지만 예술수요자는 노동에서 해방된 오디세우스뿐이고, 노동에 종사하는 그의 부하들은 예술과 단절되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는 토지가 척박하여 농업이 시원치 않았던 대신 상업이 융성했습니다. 해상 무역은 그리스의 주된 경제활동이었습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배경이 되는 트로이 전쟁 역시 해상 무역의 주도권을 쟁취하기 위해 벌어진 싸움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고대 사회는 잉여 생산물이 적어 예술의 존립기반이 취약했으나 상업이 발전한 고대 그리스에는 잉여 생산물이 풍부했고 노동에 종사하지 않는 인구의 비율이 높았습니다.

 

그리스는 비옥한 토지가 적고 구릉이 많아 올리브, 포도의 생산에는 적합하나 밀, 보리 같은 주곡 생산에는 적합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는 주곡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했습니다.

그리스의 대표적 도시국가인 아테네는 흑해 방면과 이집트로부터 밀을 수입하고, 대신 올리브유·포도주·도자기를 수출했습니다. 그리스는 식량 확보를 위해 적극적인 식민 활동을 전개했고 지중해 각지에 식민지를 건설했습니다.

 

그리스인은 중심 도시와 주변 농촌 지역으로 구성된 소규모 도시국가를 건설했는데 그 숫자는 그리스 본토에 100여 개, 에게 해와 지중해 연안 지역의 식민지에 건설된 것까지 합치면 1,000여 개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리스 도시국가의 지배계층인 시민은 생산활동에 종사하지 않았습니다. 시민은 사업가가 아니라 지주이며 도시 주변의 농촌에 토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농민은 자유민으로 소규모 자작농이거나 지주의 땅을 빌어 경작하는 소작농이었습니다.

 

고대사회의 유한계급이 다 그러하듯 그리스 시민은 노동과 생산 활동을 천시했고, 무역에 관련된 상업상의 책략, 기만, 투기는 시민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아테네, 코린토스 같은 도시국가에는 상공업으로 부를 축적한 벼락부자가 더러 나타났지만 당시 그리스에서 교역을 포함한 생산활동을 담당한 사람은 시민이 아닌 노예와 거류 외인(Metoikoi)이었습니다.

 

일부 도시국가는 시민이 신체적 훼손을 가져올 수 있는 천한 직업인 수공업에 종사하는 것을 아예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노예는 육체노동을 필요로 하는 경제활동에 종사했고, 전쟁에서 포로가 된 사람들로 충원되었다.

델로스에는 하루 10,000명의 노예가 거래될 수 있는 큰 노예시장이 었었다고 합니다. 부유한 그리스 시민은 100명이 넘는 노예를 거느렸고, 가난한 시민도 한두 명 정도는 노예를 거느렸다고 합니다. 기원전 430년 아테네 전체 인구는 25만 명으로 그중 시민이 45,000명, 노예가 12만 5,000명이었습니다.

 

많은 노예가 가내노동에 종사했으며 수공업과 광업은 전적으로 노예에 의존했고 일반 행정을 비롯하여 경찰 업무까지 노예가 두루 활용되었습니다. 거류외인은 대개 자발적으로 이주해온 사람으로 자유인이었으며 전시를 제외하고는 자유롭게 다른 도시국가로 이주할 수 있었습니다. 기원전 4세기말 아테네의 한 인구조사에 의하면 거류외인은 10,000명 정도였습니다.

 

이 숫자는 성인 남자만 포함하는 것으로 여성과 어린이는 여기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거류외인은 아테네 근처의 항구 페이라이오스에 살면서 무역, 해운, 금융업에 종사했습니다. 이들은 시민이 아니므로 정치에 참여할 수 없지만 병역의무와 납세의무가 있었습니다. 해상 무역 발전에는 국가의 안전과 평화가 절대 필요했으므로 거류외인은 자신이 택한 도시국가가 위기에 빠지면 아낌없이 돈을 내고 충성을 바쳤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무역활동은 도시국가에 의해 공동체적으로 관리되었으며,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동체 이익을 앞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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