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예술의 성격
고대 그리스 예술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술이 자율적이며 예술작품의 가치는 내재적으로 평가된다는 관점에 익숙하나, 고대 그리스인은 순수한 미적 관점 따위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예술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은 기능성인데, 예술작품도 일반 제품과 마찬가지로 제작 목적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달성하고 있는지가 문제였습니다. 그리스 예술작품의 제작 목적은 공동체를 위한 도덕이었습니다. 시는 공공 집회에서 낭송되었고, 연극은 축제 때 국가의 지원을 받아 공연되었습니다.
사회적 의미가 강조되고 예술이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이해됨으로써 그리스 예술의 자율성은 제한되었습니다.
미는 선을 위한 수단이며, 예술은 사회적 목적에 얼마나 기여하는가에 따라 평가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가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려면 예술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국가 설정한 공동체의 목적에 합당하게 예술을 통제하여 높은 도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 일반적인 이념이었으나, 소크라테스 자신도 신을 모독하고 젊은이를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아 결국 당대 이념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 고전예술은 해상 무역에서 얻은 국가의 물질적 여유에 기반을 두었습니다. 해상무역에서 이익을 계속 확보하려면 국가의 정치적, 군사적 역량과 이를 뒷받침하는 공동체의 결속이 중요한데, 개인주의는 공동체 결속을 약화시키고, 국가의 쇠퇴를 초래하는 금기 사항이었습니다. 그리스에서도 개인주의적 예술장르가 존재했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공동체 사회와 양립하기 곤란했습니다. 뒷날 르네상스인은 그리스 고전예술을 인간 중심의 예술, 즉 인문주의(humanism)예술로 이해헀습니다. 인문주의는 개인주의와는 다릅니다.
고대 예술이든 중세 예술이든 모든 전근대예술은 공동체적 성격을 지니며, 개인주의나 자유의 실현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과 야외극장에서 예술은 시민을 공동체 이념에 부합하도록 교화하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기원전 5-4세기의 그리스 예술은 공동체 사상을 고취하고 도시국가에 대한 충성과 봉사의 결의를 환기하는 구실을 했습니다. 후대 사람들이 예술의 영원한 모범으로 생각한 고전시대 그리스 예술은 도덕적, 정치적 기능을 지닌 일종의 도구예술 혹은 목적예술이었습니다. 도구적 성격과 더불어 고대 그리스 예술은 또 한가지 중요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초월적 성격입니다.
라스코 동굴벽화가 그려진 원시공동체 사회에서는 노동과 여가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분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고대사회에 계급이 분화하고 육체노동을 노예계급이 담당하게 되면서 노동은 비천한 일로 여겨지게 되는 반면 생산활동에서 해방된 유한계급이 하는 활동은 고상한 일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리스 예술에서는 현실적인 문제가 취급되지 않습니다. 현실의 경제활동은 노예나 거류외인의 몫이기 때문에 유한계급 시민이 이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가질 까닭이 없습니다. 그리스 건축은 신전이며 조각은 신화에 나오는 인물인데, 그리스 비극의 소재는 당대 생활과 동떨어진 신화나 역사이며 비극의 주인공은 신화에 나오는 영웅이거나 전설적인 왕, 귀족입니다.
여가와 노동이 분리된 고대사회에서 현실 노동세계의 일은 유한계급에게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리스 문학에서 전쟁은 각 나라의 시민들 간에 일어납니다. 도시국가는 내부적으로는 완전히 안정되어 있고 시민과 노예 사이에는 아무 갈등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노예들이 좋은 대접을 받았다는 주장도 있으나, 노예는 결혼도 할 수 없고 재산도 소유할 수 없고 한 마디로 인간적 권리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를 ‘숨쉬는 재산’ 또는 ‘살아있는 연장’ 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리스 예술에 그려진 사회는 현실적 세계가 아니라 시민의 관점에서 가공된 초월적 세계입니다. 그리스 예술이 지닌 도구적 성격과 초월적 성격은 고대예술 뿐만 아니라 모든 전근대예술에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입니다. 예술의 사회적 기능보다 예술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예술지상주의, 초월적인 주제 대신 현실적 주제를 다루는 현실주의는 근대사회에 이르러 예술의 특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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